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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0. 15:09 - rockchalk

KBL 저득점에 대한 오해와 진실


농구의 묘미는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 득점입니다. 개인차가 있고 콩글리쉬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야구는 케네디 스코어(8:7)이 있고 축구는 펠레 스코어(3:2)가 있습니다. 그 이상의 점수는 경기의 질을 오히려 떨어뜨린다고 의미를 내포했습니다. 농구에서 득점은 다다익선이 아닐까요? 감독 입장에서는 아닐지 몰라도 팬 입장에서는 70점대 경기보다는 80점대, 80점대보다는 100점대 경기를 선호할 것입니다. 그런데 KBL의 득점력은 팬들의 바람을 저버리고 오히려 역행하고 있습니다. 저득점 현상에 대한 우려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언론에서도 프로농구 연일 저득점 신기록 행진심화 현상 이유에 대한 집중 분석을 앞다퉈 쏟아내고 있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저득점에 대해 갑론을박이 왕성하게 진행 중입니다.



KBL 득점 감소 원인 분석

득점 감소가 질적 하락인지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감소 원인을 살펴 봐야 합니다. 득점 변화는 크게 두 가지 변인에 좌우됩니다. 야투율과 페이스입니다. 최근 득점 감소가 야투율 하락 때문인지 템포가 느려져 공격권이 감소한 탓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간단한 딘 올리버의 공격권 계산법을 이용해 시즌별 페이스를 구해보겠습니다. 페이스 공식은 원래 분당으로 계산하지만 여기서는 간편하게 경기당으로 구하겠습니다. 페이스를 구하고 공격의 효율성을 알아볼 수 있는 오펜시브 레이팅(100공격권당 득점)과 3점에 가중치를 준 야투율인 eFG%까지 비교 분석해보겠습니다.





KBL 프로농구 출범 이후 각종 공격 관련 기록이 지속적으로 하향세입니다. 양적으로는 경기당 공격 횟수를 나타내는 페이스가 77.1에서 70.2로 공격권이 7번이나 줄었습니다. 양팀을 합하면 14번입니다. 공격권 당 득점(PPP)가 1점이 넘으므로 팀 당 7점이 기회도 없이 공중으로 사라졌습니다. 자연히 100 공격권당 득점을 나타내는 오펜시브 레이팅(ORtg)은 118.8에서 103.3으로 무려 15.3점이나 하락했습니다. 질적으로는 eFG%이 55.9%에서 50.4%로 하락했으니 같은 페이스에서 경기했더라도 득점 감소는 불가피합니다. KBL 초창기보다 경기가 느려지고 야투율도 부정확해져서 현재 득점상태가 된 것입니다.


KBL 위기가 눈 앞에 닥친 듯 합니다만 단정하기 전에 조금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KBL 득점의 수평-수직 비교 분석

KBL을 넘어서 세계 여러 리그들과의 상대적인 분석해봐야합니다. 첫 번째로는 절대 점수 비교. 타 리그와의 비교, 즉 KBL을 타리그와 비교해서 이번 시즌 평균 득점이 어떤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두 번째는 역사적 득점 추세 비교. KBL과 타리그의 득점 변화 추이를 살펴 득점 하락이 농구 경기의 규칙 혹은 전술 상의 변화 등의 원인 때문은 아닌지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1)  리그 간 득점 절대 비교

리그 간 비교에서 NBA는 48분 경기이므로 제외하고 똑같이 40분을 놓고 경기하는 NCAA와 유럽리그를 대상으로 했습니다. NCAA는 전체를 놓고 할 경우 전력 비평준화에 의한 변수가 나올 수 있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Big12, 노스 캐롤라이나와 듀크 덕에 많이 알려진 ACC, 그리고 올해 잘나가는 Big10 세 컨퍼런스를 비교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수준 높은 국내리그인 스페인과 이태리 리그, 그리고 세계에서 NBA 다음으로 경기력이 좋은 유로리그를 살펴 리그별 각각 최고 최저 득점 팀의 평균 점수와 리그 평균 점수 비교를 통해 KBL의 득점력이 어떤지 살펴보겠습니다.





 위 표를 살펴보면 KBL은 NCAA보다는 득점이 많고 유로리그와는 비슷하지만 스페인과 이태리에 비해서는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NCAA는 공격 제한 시간이 35초이기 때문에 득점이 적다고 봐야 합니다. 페이스를 생각하지 않고 경기당 득점력에 초점을 맞춰보면 어찌됐건 NCAA는 저득점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 내에서 여전히 인기가 높습니다. NCAA의 경기당 득점이 만약 낮다고 판단되면 공격시간을 24초로 단축하는 등 규정 개정을 통해 손 써야할 일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저득점에 대한 우려가 여론화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저득점이 경기의 질적 저하나 인기하락의 위협이라고 판단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도 단순히 저득점 경기가 곧 경기의 질적 저하라고 섣불리 결론 내릴 필요 없습니다.


(2)  리그별 평균득점 변화 추이

리그별 평균 득점 변화 추이를 통해 저득점 추세가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인지 아니면 90년대 이후 수비가 강조된 후 발생한 세계적인 추세인지 알아보겠습니다.




표를 보면 90년 이후로 NBA뿐 아니라 NCAA 그리고 유로리그도 득점이 점점 하향세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NCAA는 70점대 득점을 유지하다 85-86시즌에 3점라인을 도입한 후 평균 점수를 높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NBA는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하락세였다가 핸드체킹 강화 등 규정 변화 그리고 댄토니식 속공 농구의 등장이라는 전술 변화를 통해 득점력이 다소 상승해 100점 내외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KBL만이 득점 하락 추세는 아닙니다.


KBL 초창기의 공격력에 대한 고찰 – 수비 없는 농구

위 표에서 KBL 초창기의 득점력이 눈에 띕니다. 40분 경기로는 유례없이 리그 평균 득점이 90점대를 찍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안타깝게도 KBL 농구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개인기와 슈팅력과 팀 전술로 화끈한 공격농구를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제일 처음 표에서 KBL: 97-98시즌과 03-04시즌 사이의 페이스는 77~80이었습니다. 페이스는 NCAA 역사상 가장 화끈한 농구를 했던 대표적인 두 팀과 유사한 수준입니다. 80년대말 경기 내내 풀코트 플레스로 상대를 압박하고 속공 농구를 지향했던 두 팀이 있었습니다. 빌리 텁스 감독의 87-88시즌 오클라호마 대학과 제리 타키이니언 감독의 89-90시즌  UNLV 대학입니다. 88-87시즌 오클라호마 대학은 무키 블레이락, 스테이시 킹, 하비 그랜트 등이 주요 선수였고 NCAA 토너먼트에서 준우승했고 89-90시즌 UNLV는 래리 존슨, 스테이시 오그먼, 그렉 앤써니 등이 주요 선수였고 NCAA토너먼트에서 우승했습니다. 이 두 팀의 페이스는 각각 81.0과 78.5으로 KBL 초창기와 비슷하다. 우리의 리그 평균이 NCAA역사상 가장 화끈한 공격농구를 선보였던 팀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것입니다!


농구 기록분석방법에 관한 책인 Basketball on Paper에서 기록 분석을 통해 NBA 역사상 효율적인  공격력을 보인 팀 25팀을 꼽았는데 그 팀들의 오펜시브 레이팅은 최저 108.7(99년 인디애나 페이서스, 15위)에서 최고 115.6(87년 LA 레이커스, 8위). KBL의 리그 평균이 오펜시브 레이팅은 110~118점이었으니 NBA 역대 최고 공격팀보다도 높았습니다!


정리해서 말하지만 당시 KBL 최고 팀이 아닌 KBL 리그 평균이 NCAA역사상 가장 화끈한 농구를 했던 팀과 비슷한 페이스로 NBA역사상 가장 효율적인 농구를 했던 팀들보다 효율적이었습니다!

KBL 초창기 40분 경기에 유례없이 높은 득점력은 형편없는 수비의 반대급부였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당시 수비가 개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0분 경기 내내 양팀 수비는 상대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다가 끝나는 경기였다고 봐야 합니다. 


총평 – 오해도 걱정도 비난도 잠시 접어두자

위에서 살펴 봤듯이 현재의 저득점 현상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고 비난할 필요 없습니다. 우려했던 KBL 득점감소는 오히려 프로농구 초창기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비정상적이었던 평균득점이 최근에 세계 평균 수준으로 회귀한 것입니다. 득점 감소로 인해 KBL 경기력이 질적으로 하락이 아니라 오히려 질적인 상승을 했다고 봐야 할 정도입니다. 지금 득점대가 좀 낮긴 해도 40분 경기에서는 정상 범위 안입니다. 올해는 3초룰 폐지로 인한 수비 강화와 외국인 선수의 질적 저하로 득점이 떨어졌지만 각 팀이 수비에 익숙해지고 적응하면 곧 유럽 수준인 75~80점대로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정상범위라 해도 득점이 낮은 수준이고 팬들이 체감하는 득점은 이보다 더 낮으므로 KBL도 득점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추이를 지켜보면서 규정 변화를 통해 공격을 유리하게 만들어 득점을 높이는 방법도 고려해야 합니다. KBL은 지속적으로 속공파울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고 앞으로도 규정 개정을 통해 득점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리라 믿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팀 파울을 4개에서 3개로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파울은 수비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반칙에 대한 처벌이지만 KBL에서는 수비 실패를 없는 것처럼 지워주는 아이템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팀 파울 수를 줄여 자유투를 주면 파울이 적어지고 속공이 늘면서 득점도 자연스레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NBA가 48분 경기라는 사실을 잊은 채 점수와 기록을 단순 비교해서 KBL을 폄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KBL 농구 수준이 아마겟돈으로 가는 중은 아닙니다.